무청을 데쳤다.
양이 많을 땐 이듬해 6월 행사까지 먹는 무시래기다.
올해는 5월에 이르긴 하려나.
아침은 빨리 왔으나 더뎠고, 꽉 찼으나 또한 비었다.
11월의 긴 밤이나 아침빛이야 어김없이 아침 시간에 왔고,
아침이면 수행이며 짐승 먹이는 일이며 늘어선 일들 사이를 다니는 건
마치 더딘 발걸음 같은 호흡이었다.
그렇게 움직인다고 움직이니 꽉 채워진 시간이나
또한 별 한 일도 없더라는 면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아침이었다.
느리다고 하지만 어느새 정오였고 금세 해가 뚝 떨어졌다.
멧골이다.
진돗개 3개월짜리 제습이와 가습이가 싸웠다.
줄을 쥔 자의 잘못이다.
오늘은 가습이를 줄에 묶어 다니고
제습이는 풀어서 산책을 하리라 하고는
제습이 줄부터 풀었는데 가습이한테 달겨들었다.
피가 나올 때까지 목을 물고,
가습이도 지지 않고 제습의 다리를 물어 비트는데,
내 발도 둘을 떼어놓으려 버둥을 치고 내 손도 요리저리 어찌 해보지만
아, 어느새 털썩 주저 않겠는 거다.
말릴 수가 없는 거다. 속수무책인 거다.
그렇다고 오래 손을 놓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어찌 어찌 떼어내고 둘 다 양손 산책 줄에 묶어 걷는다.
언제 싸웠더냐, 서로 아는 사이더냐싶게
무심히 또 걷는 둘이라, 아니 셋이라.
제습이는 배가 많이 고팠던 모양이다.
아침뜨락에서 킁킁거리며 풀을 매며 나왔던 뿌리들을 씹는데,
생각해보니 유채 씨를 뿌렸던 자리였을세.
돌아와 사료를 더 주었네.
달골의 두 마리 개들은 사료로만 키우기로 했다.
사냥을 하게 할 게 아니라면
그게 더 산 속에서 깔끔하게 키우는 개에 걸맞다는 생각이.
사람 먹는 걸 안 먹이겠다는.
그들을 멧돼지와 맞설 수 있게 할 참이다.
은식샘이 하룻밤 묵다.
곡주에서부터 학교 냉장고를 채워주었고,
이 멧골에서 겨울 나는데 수월하라고 열선 조끼도 챙겨주고,
바깥등이며 손전등이며 산골살림에 요긴한 것들을 풀어주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