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간에 장보러 나왔습니다, 하다랑.
학교 돌아온지 한달이 훌쩍 지났네요.
세 차례의 계절학교가 있었고
풀 매고 대문 달고 페인트칠하다가
이곳저곳 뒤집고 정리하다보니 여름이 다 가버렸습니다.
하루하루도 그렇게 훌쩍입니다.
여섯시에 일어나 몸을 풀고 다루고
아침 먹은 뒤 아홉시까지 자기공양을 하다가
아홉시부터 열두시까지 일을 합니다.
두시까지 점심 먹고 쉬면
다시 다섯시까지 일을 하고
일곱시면 저녁밥,
그 마지막은 한데모임입니다.
다음은 책상에 앉아서 해야할 일을 하거나
자기 공양, 혹은 또다른 무엇인가들을 하지요.
그렇게 시간틀을 잡아두어도
학교일 시골일이란 것이 틀을 넘어 있기 일쑤지만.
지금 학교에서는 형길샘과 상범샘이
윗사택의 집더미만한 짐들을 내리고 있습니다.
겨울이 들기 전
품앗이며 다녀가는 분들 지낼 수 있게 구들을 놓으려구요.
희정샘은 며칠 여행을 떠났고
며칠 전엔 논두렁인 분자샘이 익은 고추 따다가 밭도 매고 서울갔고,
그 며칠 전엔
논두렁이며 품앗이인 창환샘이 교실 복도 천장 페인트를 칠하고 돌아갔습니다.
형길샘은
잠깐 자전거여행을 다녀온 걸 빼고는 방학내내 물꼬에 몸 두고 있네요.
샘 고등학교 3학년 가을에 맺은 연이 이렇게 오래입니다.
여섯 살 하다는 아침 아홉시에 학교 가서 열 두시면 돌아오는데
오늘은 장 본다고 조퇴를 했습니다.
무슨 학교?
사택에서 가방싸서 아래 학교로 저 혼자 쫄랑 쫄랑 다니는 거지요.
그 공부란 것이
저 혼자 뚱땅거리며 피아노치고 장구치고 판소리하고
강당 바닥에 길 그려서 운전하고
붕어밥 주고 응가하고 간식먹고 글씨도 써보고 책도 읽고(그림만)...
그제였나요,
점심 먹는데 소나기 후두둑거렸습니다.
열린 창으로는 밭에 닿는 빗소리가 넘어오고
역시 열린 방문으로는 풀섶헤치며 빗방울 길을 만드는 풍경을 보는데
"아, 이리만 살아도 좋겠으이!"
절로 솟던 가득함들...
사는데 무엇을 더 바랄까 싶습디다.
누구의 삶에서건 이리 풍요로웁길...
언제나, 모두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