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기도 하지, 비 내린다는 오늘, 날이 맑았다.
대신 바람은 셌지만.
새벽 5시 산오름 김밥을 위해 쌀을 담그고
김밥 속으로 쓸 김치와 멸치를 볶았다.
일명 물꼬 김밥이 될 것이었다.
새벽 2시도 넘어 잔 사람들을 7시에 깨웠다.
아침밥상에 모이는 시간,
(희중샘은 김밥김과 고구마를 사러 나갔다.
차가 있으니 쓰게 된다.
어제만 해도 갑자기 월남쌈을 먹기로 하면서 희중샘은 고기 사러 황간까지 다녀왔다.)
그 고구마 딱 우리 개수만큼 있었더라는.
물꼬의 기적이라고 하자.
설거지를 하는 동안 한켠에선 김밥을 싸고 가방을 싸고.
차 두 대에 모두가 나눠 탔다.
민주지산 산오름이라.
아이들과 오를 때처럼 물한계곡 주차장에서부터 걷기 시작해
계곡을 타고 시작점에서 다리를 쉬고,
다시 1지점 시내에서 땀을 닦고,
1.5지점에서 바위에 앉았다.
겨울산다운 눈이 그곳에서부터는 꽝꽝 얼어있었다!
이 기세라면 꼭대기까지 가고야 말겠지만
저 털신을 신고? 어림없다. 어쩌려고? 겨울산을 그리 만만히 보아서야.
말려야 하리.
얼음이 없다면야 눈이 없다면야 무에 대수랴.
접을 줄도 아는 게 또 지혜라.
물꼬가 정한 2지점을 막 지나 편편한 돌들에 기대 앉아 가방을 풀었다.
대전에서 온 천문연구원들이 곁에서 같이 놀았다.
어제 같이 불렀던 아카렐라 곡 둘을 공연이라 하고,
연구원들도 재밌다며 동영상을 찍고, 같이 사진도 한 장.
물을 끓였다.
핫초코을 마셔야지. 아이들처럼 그러고 싶었지.
그 버너로 말할 것 같으면,
아이들이 겨울 산에서 언 손으로 따순 물을 먹을 수 있도록
일찍이 윤호네서 마련해주었던 것이었다.
때때마다 얼마나 요긴한지.
걸쭉하도록 초콜릿을 타서 온 입에 묻히며들 겨울바람을 털었더라.
내려오며 1.5지점 작은 개울에서
9학년들이 가위바위보를 하며 물에 손 담그기 한다.
싱그럽다.
아름다운 얼굴들이다.
삶의 곳곳에서 만나는 아름다움이라.
사람을 살도록 하는 그것.
인간의 유한성을 슬프지 않게 해주는 건
늘 그런 아름다움과 인간성이라 불리는 따스함이었더라.
물한주차장으로 돌아와 해우소를 갔다.
물꼬 바깥해우소에 견주면 편해서도,
무엇보다 따뜻해서도 들어가서 나올 줄을 몰랐더라지.
밖은 회오리 같은 바람이 텅 빈 주차장을 휘몰고 있었으니까.
우리 몸을 나뭇잎처럼 흩날리게 했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는 그 너른 마당에서 바람을 타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넓은 벌에 모닥불을 피우고 불가에서 춤을 추던 부족처럼.
잊힐 수 없는, 결코, 풍경이리.
물꼬로 돌아오자 화목샘과 정환샘이 어묵탕을 끓여 기다리고 있었다,
기락샘과 학교아저씨랑 낮밥들을 챙겨먹은 뒤.
다들 산에서 냉장고에 어묵 있다 알렸더라나.
국수까지 곁들이고 있었더라니!
아고, 물꼬에서 해주는 밥 먹이고 싶은 두 샘인 걸.
먼 남도 끝에서들 오기도 했고,
밥바라지로 고생들 해서도 해주는 밥 답례처럼도 멕이고 싶은 밥이었는 걸.
학교에 근무하는 이들이라 두 샘 때문에도 최종 취소를 결정했더랬다.
아이들에게로 혹 감염원이 퍼져갈세라.
하여 개별로는 다녀갈 수 있다는 것에 결국 모두가 모이게 되었지만.
얼음판에서 기다시피들 내려온 산길이라.
오달지게 고생했겠지.
한숨 자기로 한다.
아이들과 하던 그 구들더께를 집적이는 아이들도 없이 하는 달콤함이라니, 하하.
남쪽 창 커튼을 내리고
황토방에들 누웠네.
학교아저씨가 뒤란에서 군불을 때셨지.
그야말로 단잠이었어라.
밖에는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5시 사람들이 부엌으로 모여들었다.
밖에서는 희중샘과 하다샘을 비롯 샘들이 화롯불을 피웠다.
바람이 셌다.
차양을 벽으로 쳐 그 바람을 막았다.
희중샘이 사온 고기가 석쇠 위에서 익혀지며 사람들을 불러냈다.
손이 시퍼래져서도 모여앉아 한 점씩 먹는 고기,
시골마을 아이들이 모여앉아 참새라도 굽는 불가인 양
자잘거리는 웃음이 흩어졌고,
어깨겯는 이들이 있다는 벅참이 함께하고, 모진 바람이 우리를 더욱 붙게도 했던,
이 역시 아름다웠던 한 순간이었다.
부엌 화덕 위에선 고기를 먹지 않는 이를 위한 조개와 소라찜이 익어가고
한켠에선 콘치즈가 자글거리고...
“옥샘 짜파구리 알아요?”
알 턱이 없다. 영화 <기생충>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는.
정환샘이 사람들 주문에 따라 짜파구리를 비벼내고.
도저히 도저히 그 무엇보다 들어갈 공간이 없는 위였으리.
20시 40분에야 실타래를 위해 수행방으로 모였다.
각자가 지니고 온 생각보따리를 풀었다.
깊은 경청이 있었고, 따스함이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지, 누군가가 물음을 던지며 바로 곁에서 답을 지닌 이가 앉았더라니.
무엇을 꼭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을 지닌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말하고 듣는 속에 대답이 있었더라니.
새 학년도에 고3 담임이 되는 화목샘의 고민에는
대학생들이 나서서 거기까지라도 진로지원을 가자는 결의까지 있었다.
전라도 저 먼 섬의 고교3년생들에게
서울에서 왔다는 멘토는 적지 않은 응원이 될 수도 있으리.
새 학년도에 대한, 아니 새 날에 대한 결의도 빼놓을 수 없었네.
22:30 어제에 이은 夜단법석.
무슨 일이 어떻게 있었는지는 그 시간에 있었던 이들과 지니기로 :)
산을 내려와 낮잠까지 잤으니 남은 힘이 얼마나 많았을는지만 증언함.
아, 다음 계자에서 새끼일꾼이 꼭 되고 싶다는 상촌 도영의 줄기찬 구애에 인교샘 왈,
‘지역인재전형’으로 뽑아야 한다는 제언.(인교샘은 참말 재미난 사람!)
거기에 또 모두가 한 동의가 있었네.
벌써 이틀째 밤이, 하지만 한편 길기도 길었던 시간이기도.
아마 먼 산길을 걷고 돌아왔기 때문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