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26.물날. 갬

조회 수 514 추천 수 0 2020.04.01 14:17:19


 

아침 6, 소금물을 풀었다.

이런 날 달걀이 똑 떨어졌네.

염도계를 굳이 꺼내지 않고 손이 쉬 닿는 달걀 꺼내 띄우는데.

여느 해의 계량법으로 물 한 말 들통에 소금 세 되.

메주를 내려 씻어 물기를 말린 뒤 소금물 독에 넣는 날.

음력 정월 그믐에 하는데 사흘을 지나고서야 한다.

햇살 쨍쟁할 때 녹히면 더 잘 녹을 것 같은 소금인데

무식한 울 어머니이르셨던 대로 해 뜨기 전.

희안하게도 정말 그리 많이 젓지 않아도 거짓말처럼 녹는 소금이라.

미리 씻어둔 메주였고, 닦아놓은 장독이었다.

메주 열세 덩이를 넣고 서 말의 소금물을 붓고,

떠오르는 메주를 눌러줄 쪼갠 대나무를 걸쳐주고,

혹 튀어 오를까 가운데 돌 하나 꾸욱 눌러준 다음

건고추와 통깨와 숯을 넣다.

잘도 생겼다, 그 장!

볕을 들이며 익힌 것을 40여 일 지나 가를 것이라,

덩이는 된장으로 소금물은 간장으로.

소금물은 다시 장독 뚜껑을 여닫는 속에

바람과 볕이 들어 나날이 맛을 안고 까맣게 익어가리.

 

아침부터 kt에서 다녀간다, 전화선 고치러.

거긴 뭔 놈의 전화조차 그리 자주 문제냐 할 만하다.

멧골살이가 그렇다.

교무실도 사택 된장집도 여러 날 먹통인 전화였다,

그나마 손전화가 있으니 그리 아쉬울 것 같은 시간이었지만.

 

병원에서 전화가 들어왔다.

제도학교 특수학급을 한 학기 가기로 해서 어제 공무원 신체검사를 했더랬는데,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이건 또 뭐람?

문제가 생긴 부분이 임용에는 문제가 없다는 담당과 의사의 소견을 덧붙여야한다네.

가야지.

거리에 사람이 없었고, 차량 수도 줄었으며, 그나마 보이는 이들은 마스크를 다 쓰고 있는

마치 세기말의 어떤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은 도시로 다시 말이지.

 

감기기운이 좀.

주말에 다녀간 샘들 가운데 둘이나 감기가 있었다.

하다샘이 수시로 기침하고 열났던 둘의 열을 체크했는데,

다행히 하룻밤을 자고 가라앉았더랬다.

감기 바이러스가 여기 떨어져있을 만했겠지.

그런데 혹 코로나19?

상상코로나가 얼마든지 있을 테다.

긴장. 나보다 식구들이 더.

선별검사소를 가라 성화였다. 가야만 한다고!

아들이 자가체크사항을 보내왔다.

37.5도 이상의 열, 피로감, 재채기, 콧물, 인후염, 마른 기침, 호흡곤란, 설사,

백혈구 저하, 간기능 저하.

뒤의 둘은 미시적인 거, 앞의 8개는 임상적인 것.

증상이 다 발현되는 것도 아니라고.

근데 발열이 chief complaint; 주요호소증상이라고.

 

? 머리 엄청 아픈데... 열이 나나... 가야 하는 걸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양성판단 받는 순간 역학조사가 들어간다.

최근 2주간의 동선에 있었던 모든 공간 모든 사람도 자가격리 대상이 된다.

그 병원은 무슨 죄래?”

아들이 말했다.

그러게, 내가 확진자가 되는 순간 당장 오늘 가는 병원은 폐쇄다. 이 많은 사람들은?

제도학교 지원수업을 한 학기 갈 것인데 그 학교는 또 어쩌나?

지난 주말 다녀간 어른의 학교 멤버들은?

그들이 탄 기차와 들어간 편의점과 가족과 ... 그 경로에 있는 사람들과 공간은?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하는가?

일단 병원 현관의 방역검사소를 믿기로 했다.

열이 나면 병원의 응급실 쪽에 만든 선별검사소로 바로 보내고 있었으니.

잔뜩 긴장하며 방역복을 입고 드나드는 이들의 열을 체크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났다.

체온계를 대고 들여다보는 그 짧은 시간의 길고 길음이라니.

... 무사히 통과했다.

 

이번에 새 책을 준비하는 출판사에서 메일이 들어왔다.

‘(...) 지금은 모든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지 못하는 사태가 되어 가고 있는데요,

서점가에서도 마찬가지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희는 신간이 나왔는데 오프라인 서점에 가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서점에 사람들이 전혀 나오질 않아요. 매대도 사고, 나름 열심히 준비했는데

온라인 마케팅만 조심히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신간이 나와도 서점 본사들이 구매 상담도 해주질 않고 있구요 .

대면은 무조건 지양하고 책만 보내라고 하니

많은 출판사들이 판매 저하와 마케팅의 제한으로

신간 발행을 늦추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도 원고를 마무리하며, 상황을 좀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

 

작년 1월 말 계약했던 일이 지금까지 미뤄지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먼 멧골에 사는 내 삶까지 그렇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 사태가 생각보다 길어지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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