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비가 많았던 밤.

 

발바닥 통증이 심해서 결국 물리치료를 하러 다녀오는 아침이었다.

09:30 2교시 수업에 맞춰 특수학급 도착.

그런데 그 사이 2교시 수업이 4교시로 바뀌어 있었다.

갑자기 4학년 통합학급 수업일정이 그리된.

코로나19에서 늦어진 등교개학으로 아직 들썩이는 시간표라.

 

4교시 4학년 국어수업은 시를 다루는 두 번째 시간.

박자 맞춰 노래처럼 시를 읽고, 내용을 정리하고,

아직 쓰기가 더딘 아이들의 받아쓰기도.

시는 꼭 공부로 다루지 않아도

정서로나 언어의 풍성함으로도 참 좋은 자료.

 

15시에는 분교 학부모들과 간담회.

통학버스 건으로 오랜 갈등 을 겪던 부모들이 학교 측의 해결에 대한 감사로

교장샘 교감샘을 비롯 분교 모든 교사들을 초대한 셈.

요새는 학부모들의 요구를 아주 세심하게 살피는 제도학교더라.

거칠게 말하면 학부모들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일지도.

하지만 또 당연한.

학교는 결코 갑일 수 없다. 아이들의 부모 아닌가.

과거 나조차도 부모가 을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나 잠시 돌아보다.

머핀이며 구운 빵들이 나왔고, 작은 롤빵이 돌아오는 샘들 편에 들렸다.

롤빵 하나를 코로나19에 누구보다 고생하는 보건실에 낼 아침 들여주리라 하고 챙기다.

간 걸음에 분교도 들리지.

석면제거공사가 이어지고 있었고,

학교를 홀로 지키는 주무관님은 여전히 학교 뒤란 텃밭을 가꾸고 계셨다.

상추 좀 뜯어 가셔.”

키운 것들을 당신은 번번이 학교 샘들과 나누셨다.

 

16시 제도학교 식구 하나의 상담이 있었다.

이곳에도 사람들이 살고마음이 저린 이들이 있다.

아내로 살아가는 이 땅 적지 않은 주부들이 그렇듯

시부모와 겪는 갈등으로 마음이 많이 부셔진 그였더라.

행동지침을 줘보았다.

이 문제가 과연 누구의 것인지 따져보는 훈련도.

한 어머니가 그러셨다지, 스트레스를 왠 받냐고,

그거 안 받을라면 안 받는 거라고, 마치 전화처럼.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에서 내 마음만큼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잖나.

인생을 중요한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으로 구분하려들면

나머지는 흘려버리는 시간.

오늘도 지금도 중요하지. 오늘이 지금이 중요하지.

순간순간 살기로.

중요한 날을 기다리는 오늘도 내 삶은 내 삶일지라.

가끔 들리는 그 카페에서 주인장 아프다는 몸도 좀 살펴주고 나오다.

 

17시가 좀 지나 방문객을 받았다.

물꼬에서는 물꼬의 삶이, 제도학교에서는 제도학교에서의 삶이 있는 이번 학기.

물꼬 인연들이 이곳에 오기도.

지금은 내가 이곳에 있으니.

여기가 물꼬에 온 것처럼 온전히 푹 빠져 지낼 수는 없어도

몇 마디라도 나눈다면 마음이 나아진다 하기 다녀가십사 한.

 

움직임이 많았고, 여러 사람을 만났고, 그래서 고단도 몰리는 밤.

내일은 등교하는 아이들 발열체크 담당이네.

날마다 일찍 하는 출근이어도 하필 그런 날 늦어질 수도 있는 사람 일 아니던가.

잘 챙겨 출근하기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506 122 계자 여는 날, 2007.12.30.해날. 눈 옥영경 2008-01-02 2054
6505 39 계자 엿새째 1월 31일 옥영경 2004-02-01 2052
6504 6월 28일, 그럼 쉬고 옥영경 2004-07-04 2047
6503 아흔 다섯 번째 계자, 6월 25-27일 옥영경 2004-07-04 2046
6502 6월 15일, 야생 사슴과 우렁각시 옥영경 2004-06-20 2045
6501 2009. 7.13.달날. 지난 밤 큰비 다녀가고, 두어 차례 더 옥영경 2009-07-30 2044
6500 2007.11.10.흙날. 썩 맑지는 않지만 / 지서한훤(只敍寒暄) 옥영경 2007-11-19 2044
6499 대해리 미용실 옥영경 2003-12-26 2037
6498 12월 21일 불날 맑음 옥영경 2004-12-22 2036
6497 불쑥 찾아온 두 가정 2월 19일 옥영경 2004-02-20 2034
6496 2008. 5.4-5. 해-달날. 비 간 뒤 맑음 / 서초 FC MB 봄나들이 옥영경 2008-05-16 2026
6495 <대해리의 봄날> 여는 날, 2008. 5.11.해날. 맑으나 기온 낮고 바람 심함 옥영경 2008-05-23 2024
6494 10월 13일 물날 맑음, 먼저 가 있을 게 옥영경 2004-10-14 2023
6493 2011. 1.22-23.흙-해날. 맑음, 그 끝 눈 / ‘발해 1300호’ 13주기 추모제 옥영경 2011-02-02 2020
6492 2005.12.19.달날.맑음 / 우아한 곰 세 마리? 옥영경 2005-12-20 2020
6491 6월 7일, 성학이의 늦은 생일잔치 옥영경 2004-06-11 2018
6490 2014. 7. 6.해날. 낮은 하늘 / 이니스프리로 옥영경 2014-07-16 2017
6489 125 계자 이튿날, 2008. 7.28.달날. 빗방울 아주 잠깐 지나다 옥영경 2008-08-03 2010
6488 12월 12일 해날 찬 바람, 뿌연 하늘 옥영경 2004-12-17 2005
6487 2005. 10.23.해날.맑음 / 퓨전음악 옥영경 2005-10-24 2004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