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이런 날이면 영락없이 날적이는 대체로 그리 기록된다.
시작이 그렇지가 않아도 글월이 끝나기 전에는 꼭 발견할 수 있는 문장;
‘오늘도 고마운 날씨였다!’
그렇다. 흐린 날이었는데,
간간이 볕이 지났고,
바깥일을 끝내고 가마솥방으로 들어왔을 때 그제야 강바람이었다.
물꼬 아이들이 늘 말하는, 물꼬 날씨의 매직이었다.
“어째 너거는 김장을 할 때마다 이리 날씨가 좋노!”
아이 할머니도 여러 번 말씀하셨더라.
사실 그건 혼례식에 비가 내려도 이러면 잘 산다며
날씨 좋다고 하는 그런 덕담 같은 것이기도.
일이 신명나라고 넣는 추임새 같은.
어제 배추를 절였고, 한밤에 뒤집었다.
숨이 덜 죽은 것에 켜켜이 소금을 뿌려주면 아비와 아들이 함께 차곡차곡 쌓았다.
오늘 늦은 아침 씻어 건졌고,
낮밥을 먹고 식구들이 다 가마솥방에 모였네.
하얀샘도 손을 거들러 들어왔다가 엉덩이 붙일 데가 없다며
흙집 출입문과 바깥 창문을 손보았다.
둘 다 내려앉아서 문이 뻑뻑했던.
70포기.
올해는 무를 가는 대신 석박지로 넣기로.
설 아래 먹을 것과 이후 먹을 걸로 나눴다.
앞은 갓이며 당파를 넣고 고춧가루가 빨갛게,
이후 것은 속에 넣는 푸성귀를 빼고 고춧가루 살짝 구경만 하도록 버무렸다.
넷이나 붙었으니 일찌감치 끝난.
9개를 다 넣은 연탄난로 위에서 고구마가 먹기 좋게 익었다.
수육과 생굴을 배추와 함께, 갓한 김치와 함께
이른 저녁상에들 앉아 배를 내밀만치들 먹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며 등이 뻐근하더니
담이 또 시작되려나 조심조심 움직였는데,
모두 손발이 잘 맞아
그저 부엌에서 밥을 준비하고, 나오는 설거지만 치워내도 되었더랬네.
해마다 김장하는 결에 같이 하는 메주쑤기를 올해는 하지 않는다.
지난해 쑨 메주로 담은 된장이 넉넉해서.
그것도 코로나19가 남긴 흔적일 수 있겠네.
사람들이 많이 먹지 않은 거니까.
그런데 된장이 너무 뻑뻑했다. 묽게 만들어야했다.
산 너머 이웃에서 콩이 두 되 왔다.
밤에 콩을 삶았다.
부엌뒤란에 걸어둔, 바닥에 구멍 난 가마솥을 아직 때워두지 못했다.
하기야 굳이 가마솥 아니어도 된다.
양이 많다면 여러 차례 하면 될 것.
이 정도는 부엌의 큰 솥단지 한 번으로 가능할.
물이 졸면 끓는 물을 부어가며 삶았다.
아래가 눋지 않도록 큰 주걱으로 저어가며 초콜릿 색깔이 나도록 삶을 것인데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불을 꺼두었다 내일 마저 삶아도 되리.
손자와 엄마와 할머니가 나란히 누워 도란거리다.
아이의 할머니는 물꼬를 훌륭한 학교라고 생각하신다,
딸이 좀 고생을 해서 이제 고만했음 좋겠다 하시면서도.
사람 되어 나가는 곳이라고.
할머니는 손자에게 덧붙였다.
“하다야, 너거 엄마는 버릴 게 한낱도(하나도) 없다. ‘씨 할 사람’이다!”
종자가 무엇인가.
수확한 것 가운데 가장 실한 것을 이듬해 농사거리로 보관한다.
사람씨 할 사람이라니!
우리네 어른들은 어떻게 이런 표현들을 다 하실 수 있는 걸까.
그리고 이만한 찬사를 내가 어디서 들을 수 있었겠는지.
어디 내게 흠이 없어 그리 말씀하셨겠는가.
살아온 날들에 애썼다는 걸 당신 아시노라는 말일.
허리가 곧추세워졌다.
좋은 말이 좋은 사람을 만든다, 우리 아이들한테도 마음에 심을 말들을 잘 골라주어야지.
내가 보다 더 잘 살아간다면 이 순간도 큰 밑절미이리.
그 어느 해 받은 생일 선물보다 커다란 꽃다발 같은 어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