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사람들을 보냈단 말이지.
흐린 하늘이 더 무거워지더니 빗방울 살짝 뿌렸다.
사람들 떠나고, 달골 올라 개나리 심었더랬네.
아침, 너무 늦지 않게 늘어지지 않게 사람들을 깨웠다.
새벽 3시가 다 돼서야 공식적인 일정을 끝냈고,
03:40 도란거리던 소리를 멈추고 불을 끈 간밤이었다.
해건지기.
몸을 풀고 대배 백배를 하고 호흡명상을 하고 학교 마당 두어 바퀴 돌고,
이불을 털어 개고 아침밥.
밥상을 물리고 달골로 걸었다.
세 패로 나뉘었다, 때가 때라서. 코로나19로 아직 5인 사적모임을 금하고 있는.
마을 어르신들이 혹여 불편해라 하실 수도 있으니.
그러길 잘했지, 봄이 가까우니 더러 사람들이 보였다.
밭에 들거나, 멀리서 온 식구들을 맞거나 하고 있었다.
10년 만에 온 유정샘과 유진샘은 아침뜨樂에 처음 들었다.
연규샘은 여러 해 전에 아침뜨락 미궁에 잔디를 여러 날 같이 심었더랬다.
새벽에 나와 어둠이 밀어낼 때까지 일하고, 별빛을 이고 마을로 내려갔던,
호되게도 했던 고생이라.
한 줄씩 놓았던 잔디가 자라고 퍼져 그 틈을 다 메웠다.
지난 연어의 날에 들었던 진주샘과 재훈샘은 그 사이에도 변화를 말했다.
재작년 연어의 날에는 그들도 미궁 잔디에 난 풀을 뽑았더랬지.
거기 심은 측백 백서른세 그루 분양(이라고 쓰고 보시라고 읽는)을 마쳤고,
잔디를 깔고, 풀을 매고, 돌을 주워내고, 장미를 심고, 튤립을 심고...
모두가 같이 꾸려가는 명상정원이라.
저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서울 생활에 진주샘은 제 밥벌이를 넘어 달마다 이곳에 살림을 보태고,
그걸 보고 또 재훈샘이 저도 거들겠다 나서고,
이제 막 창업(?)을 한 연규샘은 아침뜨락 들머리에 날리는 낡은 룽따(다루촉)를
당장 마련해 갈아준다지요.
“물꼬가 참... 남는 장사한다니까!
애들 키우는 걸로 받은 복이 얼마일진대 그 아이들 자라 또 이리 살림을 보태...”
결코 넉넉해서 나누는 삶들이 아닐!
이러니, 나는, 물꼬는 또 다음을 걸어가지 않을 수 없을!
아름다운 동행일지라.
“또 먹어요?”
그렇다고 먹지 않을까?
빵을 냈다. 굽기도 하고 달걀을 입히기도 하고 잼도 바르고...
아침을 먹고 두어 시간도 지나지 않았으나 끝없이 먹을 기세였다.
넉넉하게 네 롤을 샀더라니.
샐러드와 풍성하게 먹고 떠났네.
아차, 밥해 먹고 사는 두엇에게 밑반찬이라도 좀 장만해준다는 걸
떠나고서야 챙기지 못한 걸 알았다.
김치야 어떻게 해도 냄새가 나서 보내지 못할 것이었지만.
밥바라지를 하면서도, 전체 일정 진행을 하면서도,
어느 한 순간도 게으른 마음이 혹은 서운한 마음이 혹은 지리한 마음이 들지 않은 사흘이었다.
벅찼고, 고마웠다. 순간 순간이 달디 달았다.
이 청년들이 누구인가,
어릴 때부터 물꼬를 만났고 많게는 서른 살에 이른 친구들이다.
고맙다, 잘 자라주어, 잘 살아주어.
그대들이 물꼬의 증명이라!
이틀 밤 내내 뒤란 아궁이를 지켜준 학교아저씨도 고맙다.
사람들을 보내고 달골 오르다.
학교아저씨와 준한샘이 패 놓은 사이집 서쪽 언덕 위,
그러니까 아침뜨락 아래 공터 끝 가장자리를 따라 패 놓은 땅,
거기 개나리 모종 파다가 듬성듬성 심다.
내일 비 소식 있지만 그래도 흠뻑 물주기.
그래야 물 빠지며 뿌리가 안착하니까.
그 위로 비 많아도 흠뻑 적셔 나쁠 것 없고.
언덕을 가로지른 칡넝쿨들을 좀 잘라내고,
언덕 아래 사이집 서쪽 마당도 갈쿠리로 긁어내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어른의 학교 사흘의 뒤끝이라.
어제는 바위들을 헤집으며 가파른 계곡을 올랐으니.
이제 그만.
뿌리로 심은 개나리 사이로는 햇발동 앞의 개나리 가지를 꺾어 심으리.
풀 무성한 곳이라 개나리 줄들 양편으로 검은 비닐로 덮을까도 생각 중.
아무래도 실하게 뿌리내릴 때까지는 풀에게 잡아먹히지 않게 도와야 할 테니까.
그렇다고 일일이 풀을 맬 자리도 아니고.
왜냐하면 당장 오가는 곳이며 마당이며 맬 풀도 손이 모자랄 테니.
저녁에 아들이 말했다.
“어머니 물꼬 하시길 참 잘하셨어요!”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 마음을 부리고
좋은 마음들이 서로를 북돋워줄 때면,
사람들이 돌아가고 난 뒤 꼭 아들이 하는 말이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