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2.불날. 갬

조회 수 395 추천 수 0 2021.03.26 00:42:06


 

어제 종일 내리던 비는 새벽에 눈이 되었다.

일어나니 땅을 살짝 덮은 눈.

산 위에는 상고대가 눈 시렸다.

 

오후에는 본관 앞 꽃밭 앞을 긁다.

꽃밭을 구분 짓고 있는 울타리돌이 때깔 났다.

3월에는 꽃밭의 돌이며 흙이며 죄 긁어내려한다.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30년이 지난 무덤가에서는 사별과 부재의 슬픔이 슬프지 않고 

슬픔조차도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또 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 먼 슬픔이 다가와 가까운 슬픔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인데, 이 풍화의 슬픔은 본래 그런 것이어서 울 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

우리 남매들이 더 이상 울지 않은 세월에도 새로 들어온 무덤에서는 사람들이 울었다. 이제는 울지 않는 

자들과 새로 울기 시작한 자들 사이에서 봄마다 풀들은 푸르게 빛났다.

 

김훈의 <바다의 기별>에서 옮겼던 글을 생각했다.

이제 더는 슬퍼하지 않음이 슬프다거나 하는 글 자체의 의미보다

우선은 봄이기 때문이었고,

물론 문장의 아름다움 때문이었겠고,

다음은 마른 잎들 때문이었다.

먼 슬픔이 가까운 슬픔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대목이

마치 지난여름 뜨거운 시간의 푸름들이 이 봄의 순들로 자리를 대체하는

그 순환이 아리게 다가왔던 듯도 하다.

떠나는 시간은 떠나게, 오는 시간은 그저 오게 하라,

말려도 떠나고 막아도 올 것이니.

 

3월은 달마다 셋째 주에 하는 물꼬주말수행(물꼬stay)도 마지막 주의 빈들모임도 없이 지나기로.

낮에는 노동하고 밤에는 글쓰기로.

마침 바깥수업도 없는 때라.

방문과 상담도, 위탁교육도 모두 4월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004 2021. 6. 8.불날. 소나기 두어 차례 / 다시 점봉산 옥영경 2021-07-06 393
6003 2021.10.28.나무날. 맑음 / 앞으로 확 자빠져! 옥영경 2021-12-15 393
6002 2022.12.23.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2-01-08 393
6001 2022. 3. 5.흙날. 맑음 / 경칩 옥영경 2022-04-04 393
6000 2022. 3.25.쇠날. 흐리다 밤비 옥영경 2022-04-22 393
5999 2022. 5.13.쇠날. 흐리더니 비 지나다 옥영경 2022-06-16 393
5998 2022. 6. 8.물날. 갬 / 이 노동이 허망하지 않을 수 있음은 옥영경 2022-07-06 393
5997 2022 여름 청계(7.30~31) 갈무리글 옥영경 2022-08-07 393
5996 2020. 9. 7.달날. 태풍 하이삭 / 사흘 수행 여는 날 옥영경 2020-10-08 394
5995 2020.10.17.흙날. 맑음 / 천천히 걸어간다만 옥영경 2020-11-22 394
5994 2020.11. 8.해날. 흐림 / 일어나라! 옥영경 2020-12-15 394
5993 2020.12. 8.불날. 흐림 옥영경 2021-01-10 394
5992 2021. 6.16.물날. 흐린 속에 두어 차례 빗방울 옥영경 2021-07-10 394
5991 2021. 9. 4.흙날. 갬 옥영경 2021-10-21 394
5990 2022. 1. 2.해날. 눈 날린 오전, 갠 오후 옥영경 2022-01-12 394
5989 2020.10.27.불날. 맑음 / 마음을 내고 나면 옥영경 2020-11-30 395
5988 2020.11. 9.달날. 맑음 옥영경 2020-12-15 395
5987 2020.11.20.쇠날. 살짝 살짝 해 / 밝은 불을 확신하지 말 것 옥영경 2020-12-23 395
5986 2020.11.22.해날. 흐림 / 아직도 겨울계자 공지를 올리지 못하고 옥영경 2020-12-23 395
5985 2021. 3.15.달날. 종일 흐리다 밤비 옥영경 2021-04-22 395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