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4.나무날. 비

조회 수 502 추천 수 0 2021.03.26 00:52:01


 

비 내린다.

봄이 머잖은 곳에서 건들거리고

순들이 저마다 옴지락거리는데,

종일 글은 되지 않고 글을 써야 한다만 남았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달포 만에 책 한 권의 원고를 보내겠다 했단 말인가.

믿는 3월이었는데, 3월이 배신 중이다.

그래도 때가 되면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집 안팎을 살핀다.

 

외할머니는 딸이 다섯이었다.

막내딸은 나와 나이차가 그리 많이 나지 않는 내 막내이모다.

이모가 뭔가로 퉁퉁거리면 할머니 그러셨다.

네가 밥을 먹고 하는 일이 없으니까 그러는구나.

오늘은 문득 그랬다, 내가 밥을 먹고 하는 일이 없으니까 괴로운 갑다.

물꼬에서 사는 시간에는 넘치는 일로 그런 게 없는 걸,

출간계약서에 찍은 도장은 분명 일인데 하는일이 아닌 것만 같다.

 

나이 스물에 읽던 장 그르니에의 <>을 나는 지금도 읽는다.

아직 스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나 보다.

지금의 내게는 구박을 못하고 스물의 나를 업시름한다.

 

나는...... 오늘 아무것도 하는 일 없는 공백의 페이지다. 완전히 공백 상태인 오늘만이 아니다

내 일생 속에는 거의 공백인 수많은 페이지들이 있다. 최고의 사치란 무상으로 주어진 한 삶을 

얻어서 그것을 준 이 못지않게 흐드러지게 사용하는 일이며 무한한 값을 지닌 것을 국부적인 

이해관계의 대상으로 만들어 놓지 않는 일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sort 조회 수
1386 2020. 5.28.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0-08-12 346
1385 2020. 5.29.쇠날. 맑음 옥영경 2020-08-12 349
1384 2020. 5.30.흙날. 맑음 옥영경 2020-08-12 354
1383 2020. 5.31.해날. 한밤 도둑비 옥영경 2020-08-13 344
1382 2020. 6. 1.달날. 맑음, 젖은 아침이었으나 옥영경 2020-08-13 394
1381 2020. 6. 2.불날. 맑음 옥영경 2020-08-13 352
1380 2020. 6. 3.물날. 새벽비 옥영경 2020-08-13 344
1379 2020. 6. 4.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0-08-13 350
1378 2020. 6. 5.쇠날. 맑음 옥영경 2020-08-13 348
1377 2020. 6. 6.흙날. 구름 좀 / 20대 남자현상 옥영경 2020-08-13 352
1376 2020. 6. 7.해날. 바람, 더우나 그늘도 / 주말은 주말을 살고 옥영경 2020-08-13 359
1375 2020. 6. 8.달날. 맑음, 폭염주의보 / 왜 이렇게 늦었어요? 옥영경 2020-08-13 395
1374 2020. 6. 9.불날. 맑음, 이틀째 폭염주의보 / 옥샘 어딨어요? 옥영경 2020-08-13 346
1373 2020. 6.10.물날. 저녁 소나기 / 차려진 밥상 옥영경 2020-08-13 343
1372 2020. 6.11.나무날. 아침비 내리다 갬 옥영경 2020-08-13 352
1371 2020. 6.12.쇠날. 간간이 해 옥영경 2020-08-13 359
1370 2020. 6.13.흙날. 비 옥영경 2020-08-13 352
1369 2020. 6.14.해날. 비 다녀가고 흐림 옥영경 2020-08-13 446
1368 2020. 6.15.달날. 갬 옥영경 2020-08-13 355
1367 2020. 6.16.불날. 맑음 옥영경 2020-08-13 363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