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는 마늘밭 풀을 맸다.
아침 10시 비가 시작되었다.
많이 내렸다.
오후에는 오락가락.
어제 들어온 문자가 있었다.
영상이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보고 또 보았다.
‘저희 가족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서 연락드려요’
수연이가, 휠체어를 타고 워커를 짚고 ‘산골책방’에 왔던,
역시 휠체어를 타고 계자도 함께했던,
한 발도 제 힘으로 걸을 수 없던 아이가 걷는 모습이었다.
아직 아장아장 걷는 유아 같지만
처음 영상은 거실에서 몇 걸음을,
다음 영상은 복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걷는 모습이었다.
첫걸음은 지난 10일이었다 했다.
열흘 새 걸음은 더욱 단단해져 있었다.
‘아...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답문자를 보냈다. 그 말 말고 다른 말을 찾지 못했다.
낮에 받은 영상을 또 보면서 밤에 다시 문자를 보냈다.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이모도 다 고맙습니다.
석가탄신일, 의미 있는 날에 더한 잔치 소식!
“우리 수연이, 장하다!”’
급히 찾는 문자를 받았다.
낮에 온 문자였으나 다니느라 밤에야 열었다.
멧골에서도 밀쳐두는 손전화이더니.
물꼬 한 인연의 노모였다.
자식이 사라졌다고, 물꼬 밖에 갈 데가 없겠다 했다.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인연들에게 이른다.
가출이라면 물꼬로 오라고, 괜히 세상 나가서 고생하지 말고.
그는 아직 오지 않았다.
‘하지만 물꼬로 꼭 연락이 올 거여요.’
기다려보시라 했다.
물꼬의 순기능 하나는 깃들 수 있는 곳이라는 것.
그런 곳이 되어 또한 고마울지라.
세상으로 나올 때마다 원시인이 문명을 만난 양 눈이 휘둥그레진다.
심지어 어떤 상황은 무려 10년 전에 시작된 것을 그제야 만나는 일도 흔하다.
한 아파트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서는 이랑 같이 갔다가
쓰레기통 앞에서 카드를 대는 걸 보고 놀랐네.
쓰레기 종량제 시스템이었다.
찾아보니 2013년 6월 1일부터 서울시 23개 자치구에서 음식물쓰레기 종량제가 시작되었다.
멧골 우리는 짐승을 먹이거나 퇴비를 만들어온 시간이었다.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또 놀라다.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것에 당황했지만
(그간 도시를 나오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직접 계산을 하지 않았으니...)
다행히 수년 전 여러 국제공항에서 만난 적이 있어 어리둥절함은 금세 수습되었다.
문제는 가격.
새우버거를 2,800원쯤으로 예상했던 듯하다. 비싸야 3,000원 정도일 거라고.
아! 4,500원이었다. 그건 밥값 아닌가 했다.
그걸 직접 사 먹었을 때가 천몇백원하던 시절이었다.
2,800원은 탄산음료 값이었다.
세상이, 그리, 변해있더라.
물론 그런 가게를 갈 일이 거의 없기도 해서였겠지.
그 사이 멧골에서 해가 가고 해가 가고 해가 가고 또 갔다...
여기는 백운산 자연휴양림.
시인 이생진 선생님과 가객 승엽샘, 그리고 시 쓰는 초설과 동행하여
서울 이생진 선생님 댁을 떠나 원주의 한 시 모임에 들렀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