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5.흙날. 맑음

조회 수 369 추천 수 0 2021.07.06 22:50:15


 

학교 빨래방에서는 희중샘이 여러 날 빨고 나간 이불들과 베갯잇들이 말라가고,

학교아저씨는 밭에서 풀을 맸다지.

 

설악산 아래 오색에서 닷새째.

열하루 일정. 하루 산 오르고 하루 산 아래서.

산에서는 걷고 들꽃을 보고 산나물을 뜯고,

건너 하루를 쉬는 오늘은 장아찌를 담고 청소를 하고 밥을 짓고.

민박집을 사이에 두고 윗집 아랫집 사람들과 오가고

가게 주인장과도 말을 터고.

혼자 민박을 치고 있는 윗집 주인장은

딸 아이 이름 때문에 마치 젊은 댁인 양 하였더니 팔십 넘은 할머니였다.

곡진한 인생사를 알게 되고.

부잣집 별장이라는 아랫집은 엊그제 설탕을 빌리러 가서 인사를 나누었네, 장아찌를 담느라.

벌써 여든도 넘은 아저씨는 우리나라 초대 정형외과 의사의 아들이었다는데,

아주머니한테 볼 일 있다 하니 굳이 당신한테 말하면 된다며,

낼모레 읍내 가서 설탕을 사올 테니 지금 좀 나눠주십사 하는데,

따라 오라며, 우리 집 광에 유기농 설탕이 넘치니 굳이 사다 줄 건 없다고,

한 바가지 꺼내주시다.

어찌나 잘 정리된 광이던지, 무슨 마트의 진열장처럼 온갖 식재료들이 있었다.

뜯어왔던 명이며 당귀며 곰취며 참취, 그리고 천삼덩굴을 쌈하시라 답례로 보냈다.

 

이른 아침 이번 산오름에 동행하고 있는 시인이 나타났다.

도둑이 없다는 이 동네는 문들을 열어놓고 다닌다는데,

그래서 누구든 쓰윽 들어서서 사람을 부른다.

오늘은 친구 부부가 와서 같이 나물을 뜯으러 산에 또 들어간다며

어제 딴 표고버섯과 마지막에 땄던 당귀 한 묶음을 내놓고 갔다.

옥샘 거였잖아요.”

엊그제는 늦은 오후 나물을 뜯어 산을 내려오며 들어서더니

초롱꽃에 산딸기를 담아 내밀고 갔더랬다.

그 전날 같이 산을 나올 때, 그것들을 지나치며

당신 어릴 때 간식 귀하던 그 시절 아이들이 그리 먹었노란 이야기가 있었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그 풍경을 재현하지 못하고 나왔더니만...

 

마당을 쓸고 있을 녘 반장아저씨가 또 들어섰다.

옥천?”

옥천에서 왔는 줄 들었다는 말이겠지.

영동!”

옥천 영동을 엮어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영동에서 왔노라는 대답이다.

나는 청주!”

청주를 더 잘 알아들을 거라 생각하셨던가,

나중에 주인 할머니 말로는 보은 출신이라시더라.

무슨 암호 대듯 주고 받은 인사가 자꾸 우스웁다.

반장 아저씨는 그제도 현관을 열고 들어섰더랬다.

아주머니 안 계신데요...”

알아요!”

나중에 들으니 어느 댁에 다들 마실 온 마을 어른들이 모여 있었더라는데,

거기 들렀다 우리 집 얘기 듣고 일도 없이 들렀더란 걸 주인 할머니께 들었네.

열하루 방을 빌리고, 제 집 같이 집을 싹싹 치우고 있다는 거며

마을에선 이 댁에 든 객에 대해서 얘기들을 쌓고들 있다시지.

민박촌인 이곳에 한참을 손님들 일 없이 날이 가고 있었으니,

딱 화제거리가 나타난.

오색 사람이 다 돼 가는 중.

 

내일은 한계령으로 간다.

끝청봉 쪽으로 나물밭에 들어갈 것이다.

 


* 국립공원에서 나물 채취는 금지되어 있으나

그것을 생업으로 하는 지역주민에게는 암묵적 동의 혹은 배려가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설악산 아래에서 보낼 열하루의 날들 가운데 산에 드는 날은 지역주민과 동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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