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10.나무날. 맑음

조회 수 348 추천 수 0 2021.07.07 23:12:08


 

학교에서는 운동장에 예취기를 돌리기 전

손으로 해야 할 곳들 풀을 뽑고 있었다,

나무 둘레랄지, 길 가장자리랄지.

 

설악산 아래 오색에서 열흘째.

엊그제 점봉산 나물밭에서 벌레에 쏘여 

퉁퉁 분 이마와 눈 한 쪽과 귀 언저리가 가라앉질 않는다.

어째 더 붓는 듯한.

팔다리 여기저기도 말이 아니네, 드러난 곳도 아니었는데.

 

여러 날 깃들어 지내니 이곳도 또 물꼬 같았네.

옥샘이 계신 곳이 물꼬이지요, 라고들 하더니

물꼬 인연 하나 스며들어 하룻밤을 묵는다.

그릇만 다르고 물꼬 밥이네요.

밥상 앞에서 그가 말했다.

우리 집 부엌같이 쓰고 살았다.

다른 객이 없는 민박집.

주인집 할머니도 아침부터 집을 비워 더욱 주인 같았던.

어느 날은 마을 어른들이 모여 자정까지 화투를 치셨더라지.

잠도 못 자고 일을 했으면 돈을 벌어와야지요!”

하루는 땄다시기에 나도 용돈을 달랬더니 여러 장의 지폐를 꺼내셨네.

천 원 한 장을 가졌더랬다.

할머니의 용돈이라.

 

새벽같이 방을 치우고 벽지를 바를 준비를 하다.

민박집에 들어서던 날, 방 하나에 딸린 수도가 터져 물바다였더라지.

1인용 침대방을 주시기 그냥 벽이 젖은 그 방 나 달라하였네.

상을 들여 랩탑으로 작업도 해야 해서.

읍내 가서 벽지며 사와 혼자 도배를 한다시기

기다려보시라 함께하자 하였던.

오늘이 날이었다.

아니, 어떤 손님이 도배를 다 해주고 간대?”

이웃집에서들 건너와 한 마디씩.

그러게요. 주인이 얼마나 잘해주었으면 객이 도배를 다 해준다나요!”

그간 이를 뽑아 틀니를 준비하시느라 죽만 겨우 드시고 계셨던 주인 어른,

냉장고에 있는 반찬들을 다 먹으라 내게 챙겨주셨더랬다.

아침 일찍 나서면 치즈를 쥐어주기도 하시고.

때마다 밥 잘 지어먹고, 산오름 도시락도 싸고,

우리 집 부엌같이 썼다.

떠나오기 전 읍내서 그간 썼던 것들(장아찌도 그 댁 양념들로 썼던) 채워드렸네.

잊지 않고 냉동실에 데쳐 얼려둔 취나물 다섯 주머니와

데쳐 말린 취나물 한 보따리와

간장장아찌 담은 산나물 두 통을 잘 실어 나왔네,

9월에 다시 들리마 하고.

 

남은 하룻밤은, 민박집을 나와 양양 바닷가 편안한 객실에서 묵는다.

내일 외설악 쪽을 더 기웃거려 보려고.

편히 잘 씻기도 하였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446 11월 2일 불날 흐림 옥영경 2004-11-13 1544
445 2007. 2.23-4.쇠-흙날. 맑다 흐림 옥영경 2007-03-04 1544
444 127 계자 닷샛날, 2008. 8.14.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8-09-07 1548
443 2008. 3.28.쇠날. 맑음 옥영경 2008-04-12 1549
442 7월 8일, 그게 뭐가 중요해 옥영경 2004-07-15 1550
441 12월 7일 불날 맑음 옥영경 2004-12-10 1552
440 2008. 2.21.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8-03-08 1552
439 품앗이 최재희샘과 그의 언니네, 4월 17일 옥영경 2004-04-28 1553
438 2007.11. 8.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7-11-19 1553
437 2005.12.17-8. 밥알모임 / 무상교육에 대한 다른 이해 옥영경 2005-12-19 1554
436 2008. 1. 4.쇠날. 맑음 / 평마단식 강연 옥영경 2008-01-08 1555
435 2006.5.19.쇠날. 비 옥영경 2006-05-22 1556
434 129 계자 나흗날, 2009. 1. 7. 물날. 맑음 옥영경 2009-01-22 1556
433 2005.11.9.물날 / 49일 물구나무 서기 옥영경 2005-11-11 1557
432 147 계자 갈무리글(2011. 8.19.쇠날) 옥영경 2011-08-29 1560
431 7월 마지막 한 주, 공동체 아이 류옥하다는 옥영경 2004-08-05 1561
430 2005.10.26.물날.흐림 / 새 식구 옥영경 2005-10-27 1561
429 2007. 4.10.불날. 맑음 옥영경 2007-04-16 1561
428 125 계자 나흗날, 2008. 7.30.물날. 맑음 옥영경 2008-08-06 1561
427 광평농장에서/류옥하다의 날적이에서 옥영경 2010-04-26 1561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