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는 운동장에 예취기를 돌리기 전
손으로 해야 할 곳들 풀을 뽑고 있었다,
나무 둘레랄지, 길 가장자리랄지.
설악산 아래 오색에서 열흘째.
엊그제 점봉산 나물밭에서 벌레에 쏘여
퉁퉁 분 이마와 눈 한 쪽과 귀 언저리가 가라앉질 않는다.
어째 더 붓는 듯한.
팔다리 여기저기도 말이 아니네, 드러난 곳도 아니었는데.
여러 날 깃들어 지내니 이곳도 또 물꼬 같았네.
옥샘이 계신 곳이 물꼬이지요, 라고들 하더니
물꼬 인연 하나 스며들어 하룻밤을 묵는다.
“그릇만 다르고 물꼬 밥이네요.”
밥상 앞에서 그가 말했다.
우리 집 부엌같이 쓰고 살았다.
다른 객이 없는 민박집.
주인집 할머니도 아침부터 집을 비워 더욱 주인 같았던.
어느 날은 마을 어른들이 모여 자정까지 화투를 치셨더라지.
“잠도 못 자고 일을 했으면 돈을 벌어와야지요!”
하루는 땄다시기에 나도 용돈을 달랬더니 여러 장의 지폐를 꺼내셨네.
천 원 한 장을 가졌더랬다.
할머니의 용돈이라.
새벽같이 방을 치우고 벽지를 바를 준비를 하다.
민박집에 들어서던 날, 방 하나에 딸린 수도가 터져 물바다였더라지.
1인용 침대방을 주시기 그냥 벽이 젖은 그 방 나 달라하였네.
상을 들여 랩탑으로 작업도 해야 해서.
읍내 가서 벽지며 사와 혼자 도배를 한다시기
기다려보시라 함께하자 하였던.
오늘이 날이었다.
“아니, 어떤 손님이 도배를 다 해주고 간대?”
이웃집에서들 건너와 한 마디씩.
“그러게요. 주인이 얼마나 잘해주었으면 객이 도배를 다 해준다나요!”
그간 이를 뽑아 틀니를 준비하시느라 죽만 겨우 드시고 계셨던 주인 어른,
냉장고에 있는 반찬들을 다 먹으라 내게 챙겨주셨더랬다.
아침 일찍 나서면 치즈를 쥐어주기도 하시고.
때마다 밥 잘 지어먹고, 산오름 도시락도 싸고,
우리 집 부엌같이 썼다.
떠나오기 전 읍내서 그간 썼던 것들(장아찌도 그 댁 양념들로 썼던) 채워드렸네.
잊지 않고 냉동실에 데쳐 얼려둔 취나물 다섯 주머니와
데쳐 말린 취나물 한 보따리와
간장장아찌 담은 산나물 두 통을 잘 실어 나왔네,
9월에 다시 들리마 하고.
남은 하룻밤은, 민박집을 나와 양양 바닷가 편안한 객실에서 묵는다.
내일 외설악 쪽을 더 기웃거려 보려고.
편히 잘 씻기도 하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