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15.불날. 비

조회 수 385 추천 수 0 2021.07.07 23:43:25


 

새벽빛이 희뿌염할 때부터도 하늘이 잔뜩 무거웠다.

는개비가 이미 오락가락 하고도 있었다.

달골 아침뜨락과 기숙사 쪽을 여기저기 걸으며 일을 가늠한다.

연어의 날을 앞두고 꼭 해야 할 곳과 할 만하면 할 곳과 버릴 일을 본다.

주로, 당연히, 풀을 잡는 일이다.

그들은 달리고 나는 겨우 기어가는.

연어의 날! 기본 교육일정을 빼고 한 해 가운데 가장 큰 행사다.

하루라도 일찍 들어와서 거들겠다는 몇에게 당일 들어오라 일렀다.

점주샘만 다음 주 달날부터 들어온다.

얼마나 고생을 하려고 그리 일찍 온댜?”

“2주 전에 가서 논다고 생각했는데, 늦어졌는데!”

그가 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도 더 바지런히 걸음을 재야겠다.

 

비가 본격적으로 시작기 전에 바깥일을 좀 하자고 움직인다.

사이집 남쪽과 동쪽 편백 울타리 너머 줄 선 바위들 위를 쓸고 물 뿌리다

비가 오더라도 쉬 씻길 풀 가닥이 아닌 듯하여.

그제 잔디를 깎고 날린 것들이었다.

블루베리를 따려니 조금 굵어진 비.

내일 따도 되려니.

바야흐로 블루베리 수확철이다.

 

낮엔 제법 추적이던 비가 저녁빛에 가랑비에서 이슬비로 바뀌었다.

마음먹었을 때 손이 갈 수 있을 때 하자고 창고동 앞으로 갔다.

꽃밭에 심은 적 없으나 자란 제법 키가 큰 나무 셋이 어지러이 엉켜 있다.

그 아래로 층층나무도 자라고, 어린 소나무도, 그리고 산에서 옮겨다 심은 단풍도 있다.

사초들도 있고, 우산나물도 하늘말나리도 더덕도 비비추도, 그리고 꽃취도 백합도.

그 앞을 바로 우리의 은동이 금동이 끝동이 지키고 섰는 거다.

우리들이 잠들면 그제야 깨어나 덩실덩실 온 달골을 춤추고 다니는 그들.

사다리를 놓고 올라 창고동 창문을 가리는 가지들을 쳐주고,

중심가지의 키도 낮추었다.

 

햇발동 앞 대야의 백련과 아침뜨락 지느러미 길 시작점의 양편 물화분에 심었던 수련이

결국 이곳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수련을 화분으로 셋 들였고,

오늘 물화분으로 옮겨주었다. 심어주었다고 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이겠다.

기존의 뿌리를 잘 파내고(벌써 물풀들이 씨를 내린 것들을 뽑아내고),

거름을 좀 밀어넣고 단단히 심었다.

조직이 연한 줄기라 찬찬히 조심조심 자리들을 잡아주었다.

가지런히 해주어야 저들 자라기도 수월할 것이라.

일을 끝내자 비가 굵어졌다.

학교에서는 노란 천막 안인 바깥수돗가와 비닐하우스 창고 정리.

 

“6월 말 전에 보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 작가님으로부터 들어온 메일이었다.

이번에 낼 책(가제 <학교를 다시 읽다>)의 추천사를 어제 부탁드렸고,

당신 글도 손을 못 댄 채 포도농사철이 한창이지만

짬을 내주시기로.

결이야 달랐겠지만 동시대에 비슷한 일을 해왔다; 학교 밖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일.

그 마음이 닿았으리라.

고맙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066 129 계자 닷샛날, 2009. 1. 8.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9-01-23 1467
6065 5월 11일 물날 비갰다 한밤에 다시 쏟아지다 옥영경 2005-05-16 1467
6064 2008. 1.21.달날. 눈 옥영경 2008-02-20 1466
6063 3월 14일 달날 맑음, 김연이샘 옥영경 2005-03-17 1465
6062 1월 25일 불날 눈, 101 계자 둘째 날 옥영경 2005-01-27 1464
6061 2007. 1.19-21.쇠-해날. 청아한 하늘 / 너름새 겨울 전수 옥영경 2007-01-22 1463
6060 11월 26일 쇠날 눈비, 덕유산 향적봉 1614m 옥영경 2004-12-02 1463
6059 2007.12.24.달날. 맑음 옥영경 2007-12-31 1462
6058 1월 26일 물날 맑음, 101 계자 셋째 날 옥영경 2005-01-28 1462
6057 2011.10.23.해날. 맑음 / 서울나들이(148계자) 옥영경 2011-10-31 1461
6056 142 계자 닷샛날, 2011. 1. 6.나무날. 소한, 눈날리던 아침 옥영경 2011-01-10 1461
6055 2007. 5. 4.쇠날. 맑음 옥영경 2007-05-21 1461
6054 2008. 4. 8.불날. 맑음 옥영경 2008-04-20 1460
6053 11월 28일-12월 5일, 낙엽방학 옥영경 2004-12-03 1460
6052 7월 22일 쇠날 37도라나요, 백화산 933m 옥영경 2005-07-31 1459
6051 [바르셀로나 통신 8] 2018. 6.24.해날. 맑음 옥영경 2018-07-07 1458
6050 2월 8일 불날 흐림 옥영경 2005-02-11 1458
6049 보름달 그이 옥영경 2004-10-28 1458
6048 125 계자 사흗날, 2008. 7.29.불날. 맑음 옥영경 2008-08-04 1456
6047 7월 1일, 오늘은 무엇으로 고마웠는가 옥영경 2004-07-13 1456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