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13.해날.맑음 / 중량(重量)초과(草果) 生

조회 수 1241 추천 수 0 2005.11.14 23:30:00

2005.11.13.해날.맑음 / 중량(重量)초과(草果) 生

밥알 여인네들은 우거지 엮고, 요가매트도 빨고, 겨울 커튼도 달고, 밥도 하고,
밥알 남정네들은 우두령에 올라 나무를 했더랍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틈에서 일을 거들거나
강아지마냥 써대다녔다데요..
그러다 큰 마당이 소란키도 했나 봅디다.
도시에서 할머니댁에 가끔 놀러오는 5학년 형아가 있는데
예 와서 우리 아이들과 어불리곤 하였지요.
첨엔 한 녀석과 일어난 작은 갈등이었더랍니다.
그런데 그가 화가 나서 던진 말들에 애들이 다 들고 일어난 모양이데요.
'이 학교 다니면 아이큐 떨어진다느니
지가 우리들보다 공부를 더 잘한다느니' 했다 하고
'우리는 교과서 그런 거 안배우고 삶에 필요하고 좋은 거 배운다'며 대꾸했다는데,
그 아이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여튼 우리 새끼들, 지들 학교에 대한 긍지가 대단합지요.
입학을 희망하고 있는 곽지원네(2차 고개를 못넘었는데 재수를 하실 량이지요?)서
소파며 큰 벽걸이 시계들을 챙겨오셨더랍니다.
차만 겨우 마시고 돌아가셨다지요.
잘 쓰겠습니다.

시골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여러 차례 왔다 합니다.
'무식한 울 어머니는'으로 말끝마다 제가 어느 자리고 팔아먹는 우리 어머니십니다.
"돌 지난 사흘 뒤로..,"로 시작하는 외할머니의 전언이 맞다면
태어나서 한 해를 빼곤 거의 함께 산 시간이 없는 어머닌데
제 남편은 어머니를 뵐 때마다 영락없이 제가 어머니 닮았다 하니
지독한(? '깊은'을 더 깊게 설명할 길이 없어) 인연이지요.
억척스레 돈을 잘도 벌어 멕여 살린 식구들도 많지만
모아두는 재주는 없는,
천만 원으로 시작한 사업이 몇 해만에 천만 원을 못남기고 털게 되더라도
그 동안 잘 먹고 잘 살았으니 되려 벌었다고 생각하는 셈을 가지신 어머니입니다.
두 아들이 장가 들 때도 집을 살 때도 차를 살 때도 힘이 되었지만
학비 한 번 쥐어준 적 없는,
집에서 밥 숟가락 하나 들고 나오지 않은 딸년 서울살이에
늘 마음 빚이 많았던 어머니랍니다.
뭐 대단히 자립적인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받으면 자유롭지 못하니까, 나라도 짐을 덜어드리지 정도가 까닭이었을 터인데,
시집 갈 때도 손자를 낳을 때도 해준 게 없다고 안타까워하던 어머니께,
다른 몇 나라를 돌고 돌아오니 더욱 늙어버린 어머니께,
마음이나 가벼우시라고 더 잦게 오가던 지난 몇 해였지요.
물꼬의 작은 논두렁일 수 있는 게,
아프다는 소식에 뭔가 약재라도 캐서 달여 줄 수 있는 게 최근의 기쁨이 된
참으로 가난한 늙은 에미랍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했던 모텔을 처분하시고
농사지으며 가끔은 당신의 씀씀이 가락을 잊지 못해 동동거리기도 하시는.
한 밤에야 전화를 드렸지요.
"어렵제? 그래, 세상일이 그리 생각대로 안된다..."
세상 물정 모르니 저리 산골로 들어가고
세상이 고달프니 산골로 들어갔다 생각하는,
이 삶이 설득이 안되는 울 어머니는
추위가 세상에서 가장 큰 적인 딸이 보내는 산골의 추위와
불을 때고 앉은 아궁이 앞을
뭐라 한 마디도 못하시며 그저 속상해라셨지요.
버린 딸이 아비를 살리는 바리데기라도 된양
간간이 보내드리는 용돈을 세상 어떤 선물보다 크게 받으셨던 요즘이셨더랍니다.
"내가 돈을 좀 마련했다."
"그냥 논두렁들한테 다 보내는 거라 간 건데 신경 쓰지 마세요."
'49일 물구나무서기' 글월이 거기도 갔던 게지요.
"어려울 때 쓰고 갚아주면 되지."
늘 그러시듯 한 마디로 딴 말 못하게 하십니다.
'아이구, 내가 내 앞가림 하자 들면 죽어도 안받을 걸...'
전화를 놓고 괜스레 퉁퉁거리는데,
그만 눈물 그렁그렁 굅디다.
둘도 아닌 딸 자식이 평생 부모를 이리 후비고 삽니다려.



< 어머니 >


땅속으로 걸어 들어가시네

중량(重量)초과(草果) 生,

끄응


(2003.05.07.시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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