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13.불날. 맑음

조회 수 326 추천 수 0 2021.08.08 02:11:31


 

새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오늘은 밥을 모시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자주 그러한데 정작 가장 공을 들여야 할 일보다

다른 준비에 더 시간을 쓰고는 한다.

중심을 잘 아는 이는 그런 경우가 덜할 테지.

정신을 차리면 또한 그 중심을 놓치지 않을 게고.

하지만 일이란 늘 실무와 잡무가 같이 있다.

잡무를 바탕으로 실무도 빛난다.

물꼬의 삶을 들여다보면

청소하고 풀매고 밥상을 차리는 일이 중하고,

어쩌면 그게 다다.

여기선 그런 일들이 잡무가 아니라는 말이다.

아침뜨락을 걸으며 아가미길만 풀을 좀 뽑고 나오다.

햇발동을 구석구석 걸레질도 하다.

묵어가는 이를 위한 정성스러움, 그가 알거나 모르거나 나는 알지,

지금은 지금의 귀한 일을 하는 걸로 충분하기.

꼭 해내야 할 일정이 있는 모임이 아니니

저녁 준비도 되는 대로 하면 되지.

그때는 그때의 귀한 일을 하는 걸로 또한 흡족하기.

내가 바라던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육사의 청포도가운데)는 손은 아니나

내 바라던 손님이시라.

좋은 벗(이자 선생님인)을 아니(알고 있으니) 나도 좋은 벗이 되고자 한다지.

 

1시 역으로 오는 이를 맞아 오늘의 구성원들이 바깥 밥상에 앉았다.

밖에선 밖의 음식에 맞추기.

고기를 먹지 않지만 밥상의 모든 건 고기가 아니지.

2시에는 인근 도시의 구순 어르신을 같이들 뵈러 갔다.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 분이셨다.

사람들 몇 온다고 강의처럼 복사물이며 책 선물이며 들고 오셨다.

, 사람을 만나기 위한 준비, 그것이야말로 내게는 무척 귀한 말씀이셨네.

저녁 6시 물꼬로 들어왔다.

물꼬 한 바퀴, 달골까지.

어둑해져서야 저녁밥상에 앉았다.

첫째마당으로는 밤이 내리는 가마솥방에서 물꼬의 여름 음식을 먹다.

둘째마당에는 23시 달골 햇발동 거실에 노래와 곡주와 바람과 별이 있었다.

다행히 어제 햇발동 여기저기 온통 번져 나오던 습의 상황이 좀 수습이 되어

온 사람들이 그럭저럭 크게 불편을 겪을 일은 없었다.

고맙기도 하지, 물꼬에 사는 일이, 늘 잘 맞춰지는 상황이.

 

80년대를 기억하는 이들이었다.

그때 우리 어딨었지?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는 않기로.

오늘의 어제의 결과.

우리는 어디로 갈까?

아주 모르지는 않는다. 오늘의 결과가 또한 내일일 것이므로.

결국 지금 어찌 사느냐가 문제지.

그건 또한 어찌 죽을 거냐의 문제이기도.

오늘은 그저 오늘의 삶을!

오늘도 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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