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2.불날. 비

조회 수 336 추천 수 0 2021.12.08 22:15:30


 

비가 질기다. 가을장마다.

세상은 떠난 이가 산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죽은 이가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큰 마지막 선물이 그것일.

부고를 받은 물꼬 식구들이 서로 안부를 물었다.

 

학교 살림을 여며놓고

어둑해서야 대해리를 나섰다.

일산의 빈소로 간다.

초등 아이들이 자라 스물 중반에 이른 자매가 상주들이다.

물꼬의 품앗이로 또 논두렁으로 손발을 보태고 살림을 보탰다.

고인 또한 물꼬의 논두렁이었다.

그 엄마가 내 연배라는 게 더욱 짠했을 것이다.

그 여식들이 내 자식의 연배라 더욱 아팠을 것이다.

오랜 병상이었지만 세상을 떠난 소식은 언제나 뜻밖이다.

 

늘 장화로 사는 삶이다.

상복을 입고 나서니 장화가 걸린다.

읍내 시장에 들러 신발을 하나 사 신었다.

떠난 당신이 신발 하나 마련케 하고 가셨네.

영동역에 차를 두고 기차를 타고 가는 밤.

 

신발 보고 옥샘 오셨구나 했어요!”

빈소에 들었다가 식당으로 나오니

맞는 고인의 가족들에 물꼬의 인연들이 여럿이다.

신발 취향으로도 주인을 알만치 수년을 이어온 만남이었다.

수연, 태희, 다은, 도은들이 물꼬의 아이들이었고,

그 부모님들이 자매들이다.

질기지 않을 수 없는 우리들의 연이라.

 

새벽 3시에 이르고 있었다.

빈소가 있는 방에서는 어른들이, 식당에서는 상주의 친구들이 밤을 지키고 있었다.

어른들 주무시는데 이제 그만 조용해야 하는 거 아닌가...”

친구들이 왁자해서 어른들이 마음 쓰이던 상주 태희샘과 수연샘이었다.

아니야, 이런 날은 그러는 게 더 좋아.

내일 일정만 자세히 안내하고

일단 그대들도 눈을 좀 붙여.

특히 4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거 거듭 확인시켜주고.”

그때 내 말을 듣고 있던 수연샘이 말했다.

, 소름, 물꼬인 줄 알았어!”

우리 모두 그 순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네.

특히 물꼬 계자 때면 우리는 수시로 모여 머리 맞대고 상황을 그리 확인코는 하지.

고마워라, 우리 지금 슬픔을 나누는 이 자리가.

깊은 물꼬의 인연들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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