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1도의 아침.
단호박양파수프를 커다란 솥단지에 해서 두루 나누다.
다음주말에 서울권에 들린다 하니
품앗이샘 하나가 동행을 알려왔다.
코스1, 2, 3으로 세 안을 만들어 보내왔네.
심지어 1안은 그가 반차를 내서 서울역에서부터 이 노인네를 실어
가야할 곳들을 들린 다음 저녁에 그네에서 묵는.
다음 날 그의 차로 다른 일행들을 만나는 곳까지 가서 떨어뜨려주는 것까지.
고맙네, 기표샘.
택견모임.
설 지나며 연일 새벽이면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기온이었다.
낮에도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간다 하기
안에서 모여 앉아 택견이론을 훑자고 한 날.
깨달음이란 것에 대해서들 이야기가 있었네.
한 중년여성은 부지런히 수행터들을 돌고 돌아와
끊임없이 뭔가를 깨달았노라 말한다는데,
그것도 중독이 있는 게 아닐까.
배움이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 아닐지.
우리의 배움이 익힘으로, 그리하여 삶을 견실하게 하기를.
젊은 날 귀농한 한 부부는 유기농을 지어오다
이제 손을 좀 놓고 있었는데,
관행농보다 못한 얼치기 유기농부들에 대한 실망을 토해내기도.
명상이며 수행하러 다니는 치들의 얼치기 수행자들처럼
나도 그 축은 아닌가 돌아보네.
시골학교에 대한 환상에 대해서도 듣다.
건강한 교육을 위해 시골로 간다는 이들을 말리고 싶다는데.
작은 학교에서 관계가 고착화 되더라,
제도학교가 시골 소규모라고 제도교육이 아닌 게 아니더라고.
시골 작은 학교도 고스란히 도시에서 받는 교육과 동일한 교육에 다름 아니라는.
심지어 시골 아이들이라고 논밭에서 나는 것들 이름을 아는 게 아닌.
삶이 도시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아이들.
정보와 문화의 전 국토단일화.
몇 뜻있는 교사들이 없지는 않으나 그것도 그 해 뿐.
그가 떠나면 다시 원상복구.
학교배치를 도울 때 시골 작은 학교를 권해왔던 내 눈을 넓혀주었더라.
역시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어찌 사느냐가 관건일세.
한 댁에서 저녁밥상을 냈는데,
이삿짐처럼 부려놓은 짐들, 그 어수선함에도 사람을 맞고
그야말로 김치 하나로 밥상을 내는.
아, 그렇게도 사람을 맞는구나,
그런데도 이리 편하고 이리 맛나구나 하였네.
사는 일 너무 빡빡하게 구는 게 아니라는 한 선배의 말을 떠올렸다.
물론 물꼬는 교육공간이여 더한 가지런함을 요하게 된다지만
좀 더 헐렁헐렁하게 살아도 좋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