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5-08

아침 해 두텁습니다.
온, 온 마음으로 이 세상으로 이사온 아이를 맞습니다.

1. 먼저, '햇살밝은아침'에게.
어서 와라.
봐, 어깨로 내려앉는 이 햇살, 가지 사이를 에돌고 가는 저 바람도 좀 봐.
슬픈 그림자조차 얼마나 아름다움인 세상이더뇨..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고 네가 그렇게 왔으리.
이 세상에 밥으로 와서 밥이 된 사람들처럼
이 우주의 귀한 밥이 되거라.
햇살처럼 환하거라,
기쁨이거라.
그리고,
'겸허한 자존심'을 가지고 살아가길...
어서 와, 어서 와라.

2. 그리고 엄마 아빠 책상에 붙여두라고 주는 글.
이게 말이다,
애 새끼 태어났을 때는 꼭꼭 다짐하다가
애가 자라 부모랑 갈등이 시작되면,
-먹는 것 하나에서부터 먹어라, 싫다고 얼마나들 싸우게 되는지-
잊혀진단 말야.
저런 애물단지가 없다는 둥 하면서.
갈등은 한밤중에 일어나 기저귀 가는 일부터 시작되지...

삼숙샘, 정말 애썼어요, 정말 정말.
성균샘도. 축하, 축하!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 다이아나 루먼스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 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 하리라

아이를 바로잡으려고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많이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더 많이 아는 데 관심 갖지 않고
더 많이 관심 갖는 법을 배우리라

자전거도 더 많이 타고 연도 더 많이 날리리라
들판을 더 많이 뛰어다니고 별들을 더 오래 바라보리라

더 많이 껴안고 더 적게 다투리라
도토리 속의 떡갈나무를 더 자주 보리라

덜 단호하고 더 많이 긍정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3. '햇살밝은아침'이의 이름을 고민하다
이 이름도 참 좋으네.
'햇살'보다는 훨.
그 이름은 뭔가 빠진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싶었는데
옆에서 그 이름 듣던 기락샘이,
"너무 유아틱하지 않냐? 태어나기 전에 잠깐 부르는 거면 모를까..."
듣고 보니 내 느낌도 그런 것 비슷하지 않았나 몰라.

성균샘의 이름 공모 글을 읽고서부터
꽤 시간을 들이며 아이의 이름을 생각해오다.
맨 먼저는 주저없이 임진강을 생각했지.
금님(임금님), 당수(임당수), 꺽정(임꺽정), 어당(임어당), 의로(임의로), 연수(임연수, 물고기).
이름을 생각할 때 그 성씨하고의 흐름도 생각하게 되니
이런 덩어리들이 따라 오더라구.(성씨좋은 사람과 결혼해야한다니까...)
며칠 전엔 지구 위에서 젤 큰 공공도서관이라는 시카고 공공도서관 가서
국어사전까지 빌려오다.
이런, '임'자로 시작하는 말은 왜 이리 가난한 거야. 몇 쪽이 안되는 거다.

우리 아이 이름을 지을 때를 생각해 본다.
남자 아이 이름은 외려 더 여성적이어야지 않을까,
여자 아이라면 남성성을 이름에 실어주는 게 더 좋다 싶듯이.
게다, 한글로도 의미를 가지면서 한자까지도 주고 싶었다.
그러다 내가 써왔던 동화의 주요인물 '하다'로 결정.
물론 우리말로는 공부하다, 노래하다의 그 하다. 무엇이든 애써서 열심히 살라고.
한자로는 큰집 하, 많을 다. 큰 집에서 많은 사람들 섬기고 사라고.

...
그리하여,
역시 처음만한 게 없다고,
나는 다시 '임진강'을 생각하다.
강이 가진 그 유구함을 사랑하는 이로써
아이 하나쯤의 이름에 한강, 동강, 영산강 정도의 이름을 붙여주고팠던 참이다.
임진강, 설명이 필요치 않은 강이면서
(한강의 제 1지류면서 남북을 흐른다. 얼마나 민족적인 강이더냐고 말할 것까지 아니더라도)
이름만 떼고 보면,
진강, 긴 강이라는 의미, 그러니까 장강이라는 거다.
그 아이의 긴 생명력을, 질긴 삶을 담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우리가 무엇을 하거나 생각하는 그 '긴 호흡'을 기대할 수 있는 이름이라는 생각.
한편 아주 무거울 수도 있고 꼭 그렇지만도 않을 수 있겠다.

그 다음 추천은 '은결'이다.
발음해보니 성씨하고도 잘 이어진다.
햇살좋고 바람 그리 거칠지 않은 날
팔랑대는 미루나무 잎사귀를 본 적 있을 거다.
그 파닥거리는 잎들은 수다같기도 한데
난 그 순간 아주, 아주 살고 싶고는 하였다.
꼭 물 위가 아니더라도(은빛 물결)
그 잎사귀가 만들어내는, 살고 싶게 하는 기운을 가진 이름도 좋겠다 싶더라.
좀 더 어거지를 부리면,
임은결, 임은 결이다, 사람은 무늬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결을 갖는다,
어떤 결이냐는 자신이 다듬는 거다,
결을 잘 다듬으며 사는 사람,
그런 뜻도 없지 않겠다.

그리고 간밤 자기 직전,
임결고운(결이 고운 사람), 임곧은(곧은 사람), 그런 이름도 생각해봤다.
특히 '임 결고운'은 발음해보면 생각보다 느낌이 썩 괜찮기까지 하다.

다시,
새로 이 세상에 이사온 아이와
그의 아비 어미에게 축하함.
허참, 오랜만에 유쾌한 날입니다!

; 시카고에서

신상범

2003.05.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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