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방 날적이 10월 29일

조회 수 926 추천 수 0 2003.10.29 22:56:00

2003년 10월 29일 물날 맑음

자유학교 물꼬 울타리 찻집의 은행나무 가운데 세 그루는
잎을 죄다 떨구어내었습니다.
그만 퀭해진 어미 잃은 소 눈처럼
휑하니 저 건너 산이 들어옵니다.
그렇게 성큼 한 계절을 운동장으로 들이며
우리 아이들 그 사이를 비집고 걸어 들어오네요.
민근, 영준, 준성, 왕진, 형주, 무연, 상연, 대원, 두용, 해림, 하다,

우리 아이들이 요가와 명상을 하고 있는 광경은
늘 혼자보기 아쉽습니다.
그 고요 속에 있으면
그만 우리 모두 사람되고 말지 싶습니다.
오늘은 삶 가꾸기.
이번 주부터는 삶 가꾸기를 다르게 진행합니다.
앞 시간에 제가, 다음은 희정샘과 상범샘이 두 패로 나누어 하던 것을
물날 하루는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모두를 한데 모아놓고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두 분이 온전히 하루를 교무실에서 쓸 수도 있어야겠다 싶은 것도 까닭이나
역시 선생은 아이들 속에 있어야 사는 것 같은
제 욕심도 한 몫했네요.
영동대를 다녀오니 세 시가 넘으니
나갈 때 희정샘한테 재료를 부탁했더랬지요.

다져진 재료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읊고
씻고 온 손 걷어부치고 만두를 빚습니다.
옛날 옛적 손이 큰 할머니가 마당만한 만두피에다 온갖 재료를 넣고
무지무지 큰 만두를 빚어 웬갓 동물 다 나눠먹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
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이들 보내는 등 뒤에서 그 얘기가 생각났지 뭐예요.
낼 이야기 들려주기에서 해야겠습니다.

욕심내지 말고 나 말고 다른 이에게 줄 만두를 딱 넷,
세 개도 아니고 네 개만 빚자고 시작했습니다.
모양도 욕심 내지말고 그냥 딱 접어
제발 입을 벌리지는 않게 꼭꼭 여미자 당부했습니다.
재료를 비비는 동안 침 튀겠다고 입을 틀어막고 있던 녀석들이 뎀벼듭니다.
한 사발씩 세 패를 나눠 퍼주니
제법 손을 정성스레 씁니다.
여문 손이 집을 짓고
여문 손이 세상을 잘 살지 않던가요.
아이들 손이 무섭습니다,
만두피를 세 묶음 사면서
글쎄 이걸 다 빚기나 할까 싶더니
웬걸요, 모자라데요.
만두를 구웠습니다.
"맛이 어떤지 말해 줘. 그래야 더 줄지 안줄지를 결정할 것 아냐."
"선생님, 진짜 맛있어요."
우리 상연이가 얼른 대답합니다.
"여태껏 먹은 만두들과 견주어줘야지."
"여태껏 먹은 만두들보다 훨씬, 최고로 맛있어요."
얼른 상연이 만두 하나 더 주자 너도나도 나섭니다.
"그럼요, 그럼요, 최고예요."
한 판, 두 판, 세 판, 그리고 마지막 한 판을 굽고
어, 속이 아직 남았잖아요.
왕창 볶았지요.
아이들은 입도 무섭습니다.
눈 깜짝입니다.
그래도 숟가락 놓기 못내 아쉬운...

아이들과 하는 일은
정작 공부하는 시간보다 그 사이와 사이
빛나는 순간들이 더 많다 싶을 때가 정말 많지요.
어제는 하다랑 읍내 다녀오던 길이었는데
저들끼리 당산나무에 얽힌 얘기를 들려줍디다, 제게.
차가 민근이를 태우고 석현을 가는 사이
아이들이 우르르 헐목까지 뜀박질을 하는데
가는 길에 있는 당산나무 터가 저들 역시 쉼터랍니다.
브레이크를 밟고 오줌도 누고 기름을 넣고 다시 간답니다.
뭐든 놀이고 뭐든 공부고 뭐든 삶인 아이들입니다.
정말 학교가, 공부가 어떠해야할지를
날마다 이 아이들을 통해 배우고 익힙니다.
음력으로 2004년 삼월 삼짇날 진달래화전을 부쳐내며
학교 문을 열 날에 마냥 가슴 부푸네요.
지금도 이미 충분하다 싶지만.

참, 아이들 바래다주고 온 상범샘 손에
진아 왕진이네서 온 막 담은 김치가 담겼습니다.
마침 김치 바닥인 참인데
맛나기도 맛나게 먹었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잘 자...


진아

2003.10.30 00:00:00
*.155.246.137

맛있어요... 우리 엄마가.. 할아버지 몰래 준거니까 맛있게 드시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공지 물꼬를 다녀간 박상규님의 10일간의 기록 [5] 박상규 2003-12-23 153523
304 [답글] 섭섭해요 정미헤 2004-04-26 925
303 숙제 : 편안한 마음으로 집에오다. [1] 채은규경네 2004-04-22 925
302 큰뫼의 농사 이야기 8 (감자 심으러 가세!) 나령빠 2004-03-29 925
301 상봉의 장면 김상철 2004-02-10 925
300 참 잘 지내고 있구나!^^ 해달뫼 2004-01-31 925
299 논두렁이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1] 신상범 2003-10-13 925
298 꼭 갈꺼야!! 태정이 2003-06-26 925
297 방과후공부 날적이 신상범 2003-06-24 925
296 방과후공부 날적이 신상범 2003-06-10 925
295 전쟁 반대! 그리고... [3] 강무지 2003-03-29 925
294 제 동생이 이제 8살이 되는데요, [1] 장정인 2003-02-24 925
293 망치의 봄맞이... [1] 김희정 2003-02-21 925
292 Re..알려드립니다. 자유학교 물꼬 2002-12-27 925
291 Re.. 잘 다녀오시길... 허윤희 2002-09-26 925
290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가.... 도경이 2002-07-29 925
289 >o< 드디어 4강진출 ★☆★ 양다예™ 2002-06-23 925
288 Re.. 자유학교 물꼬입니다. 신상범 2002-03-17 925
287 ^^ 소식지 자~알 받았습니다! 원종 2002-03-11 925
286 진짜진짜 올만이예염..............-_-? 조은시원현장 2002-02-13 925
285 기적은 진행중... [2] 김미향 2010-10-25 924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