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공부 날적이

조회 수 936 추천 수 0 2003.06.10 21:42:00
4336. 6. 10. 불날

베개가 안에서 가지고 노는 유일한 물건인 아이들, 뭐 좋은 방법 없을까 고민했지요.
그러다 반짝 하고 생각이 났습니다. 겨울 내내 아이들이 만든 놀잇감!
그러니까 고누하고 칠교하고 주사위놀이하고 산가지, 집쌓기놀이 그리도 뭐뭐뭐...
산가지놀이에 아이들이 정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좀 큰 애들은 칠교를 가지고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 정신이 없고...
놀이를 하다 보면 애들 성향도 고대로 들어납니다.
금방 포기하고 돌아서는 놈도 있고,
안 되면 성질내는 놈도 있고,
기가 막히게 척척 잘 맞추는 놈도 있고,
이러거나 저러거나 물 흐르듯 하는 놈도 있고,
안 하다가 남 하면 꼭 달려드는 놈도 있고,
칠교가 두 벌이었는데, 우리 더 만들자 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나가서 합판을 잘라서 사포로 다듬고, 색띠지를 붙여서 테두리는 색테이프로 감싸고, 세 벌이 더 만들어졌습니다.
오늘은 그래서 만사 제쳐두고, 놀잇감 가지고 놀기로 했습니다. 오늘 공부 안 하냐고 내내 물어대는 애들, "그래!" 했더니 좋다고 난리입니다. 물꼬 공부는 재밌어라 곧잘 하면서도 그래도 노는 게 더 좋은가 봅니다.

애들이 아직도 내 것 챙기려하는 안 이쁜 모습이 있습니다. 놀잇감이 몇 벌 있으면 제 것 챙기려 하고, 간식 먹을 때도 제 것 챙기려 하고... 참 보기 싫은 모습인데, 그게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같이 잘 나누는 마음.... 그게 참 힘든가 봅니다. 하기사 어디서 그런 모습을 봤을까요, 그러란 말을 들어봤을까요, 늘 경쟁이 아니던가요.
얘기하고 또 얘기해야겠지요. 그래도 그 안에서 작은 변화들이 있을 때, 또한 참 기쁘지요.

민근이 먼저 집에 보내려고 같이 나서는데, 제 등에 색테이프가 붙어있었나 봅니다. 민근이가 떼주면서 그럽디다.
"선생님, 그거 붙인 애들은 일주일동안 차 앞 좌석에 못 타게 해요?"
우리 6학년 민근이.... 1, 2학년도 아니고... 아이고 머리야...
"민근아, 뭘 잘못했을 때, 꼭 벌을 줘야 할까, 벌은 왜 주는 거지?"
"다시는 그러지 말라구요."
"그렇지, 다시는 그러지 말았으면 해서 그러는 거지? 근데 나는 그러기 위해서 꼭 벌이 필요하다고는 생각지 않아. 뭔가 다른 방법도 있질 않을까? 민근아 너는 벌 받으면 기분 좋아?"
"아니요."
"벌 주는 사람도 벌 받는 사람도 기분 안 좋은데, 왜 벌을 줘야 하지?"
"그럼 벌 주지 말고 말로 겁만 줘요."
"너는 그러면 좋겠니?"
"아니요..."
"뭐 다른 방법은 없을까, 어떤 방법이 좋겠니?"
"다른 방법은 모르겠어요. 생각이 안나요."
"그렇구나. 그럼 우리 같이 생각해보자."
잘못했을 땐 벌!이라는 공식을 가지고 있는 우리 애들입니다. 어른들이 그렇게 밖엔 하지 않았습니다. 계절학교 교사 하루재기 시간에 늘 얘기하지요. '매'가 얼마나 편한 도구인지...
먼저 어른들이 깊게 생각해야겠습니다.

다시 차유, 물한리로 아이들을 데려다 줍니다. 앞에 앉은 주리에게 또 묻습니다.
"주리야,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의사요."
"와, 의사가 되고 뭘 하고 싶어?"
"'있잖아요. 아픈 사람들 고쳐주구요, 그 다치고 피 나고 그러면 째지고 그러면 피도 나고 그 징그럽고 그렇잖아요. 그런 것도 고쳐주고 하는데, 힘든 점이잖아요. 힘든 점이 두가지 있는데 뭔지 아세요, 그 다치고 피나고 째지고 그러면 고름나고 징그럽잖아요, 그것도 힘들구요, 아이들 아프잖아요, 그러면 아이들은 고치기 힘들잖아요. 땀방울요, 땀도 나고 그러잖아요. 그리고 주절주절, 중얼중얼. 웅얼웅얼 .... 그것도 힘든데, 그래서 힘이 돼요."
우리 1학년 주리, 뭐라고 뭐라고 열심히 얘기하는데, 그만 중간에 놓쳤습니다. 근데 너무 열심히 얘기한지라, 다시 묻기가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래, 그렇구나, 너무 좋다. 나도 나중에 다치면 잘 치료해줘, 알았지?"
"네."

참, 오늘 대련이가 또 안 왔습니다.
우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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