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곳에 썼던 글을 옮겨 놓습니다.


< 가방에 수저가 든 까닭 >


“이러다 망하고 말지, 아암.”
몇 해 전 처음 미국을 방문해 일년 남짓 지내는 동안 소스라치게 자주 놀랐더랬습니다. 한국이라고 물질적 풍요가 적은 것도 아닌데, 정말이지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더미들과 어디고 넘쳐나는 일회용품의 규모에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지요.
저것들을 다 어쩐단 말입니까. 이 지구는 도대체 어찌 된단 말입니까.
꼭 이 미국의 풍요가 아니더라도, 전 지구적으로 엄청나게 발달한 생산력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생계를 걱정하며 사는 걸 생각하면 참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어디 그런 생각만 했겠는지요. 저것들을 저리 써대자고 그토록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돈을 벌고 산단 말인가, 저런 풍요가 우리를 보다 인간다운 삶으로 끌어가는가...

저는 한국의 산골에서 조그만 학교를 중심으로 작은 공동체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하기야 사람살이가 언제는 공동체가 아니었습니까. 속세의 인연을 끊고 절집에 들어앉은 스님조차 어디 바깥세상과 무관하던가요. 우리 몸둥아리 하나만 보더라도 각 부분들의 섬김과 나눔이 있지 않으면 어찌 한 순간인들 살아 숨쉴 수 있을 지요. 이 우주 가운데 어떤 다른 것의 섬김과 헌신 없이 삶을 영위하는 존재가 어디 있던가요.
그런데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문제는 오늘날의 문명이 이런 공동체성을 잃어버렸다는 거지요. 공동체성에 대한 무지가 이 세상의 위기를 가져온 건 아닐까, 그것이 인간의 참된 행복을 왜곡하게 하는 건 아닐까, 그것이 산골로 발걸음을 끌었던 첫째 까닭이지 않았나 돌아봅니다.
그러니 산골에서 유기농으로 농사지으며 아이들이랑 모여 사는 일이 중뿔날 것도 없습니다.없는 걸 하자고 한 게 아니니까요. 원래 하던 거, 우리가 고래도 살아왔던 방식으로 살자는 것이었습니다.
공동체에 속한 우리끼리만 잘 살자는 건 더욱 아니었습니다. 먼저 생각한 이들이 모여 살면서 잊히고 있는 공동체성을 회복해내고, 그 실험이 옳다면 공동체 삶이 들불처럼 번져가 언젠가는 누구말대로 ‘인연을 맞아서’ 온 세상을 정토, 혹은 천국으로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는 거지요.
공동체! 스스로를 살려 섬기고 나누는 소박한 삶을 통해 저 광활한 우주로 자유롭게 솟구쳐 오르고 싶었던 겁니다. 지구 위에서의 우리 삶이 거대하게 한 가지 모습으로 중심화 되어가는 것에 반해 작고 여린 것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찾기 위해 우리 안에 있었던 것을 깨닫고 회복해내고 싶었던 겁니다.

사실 거대한 담론이야 이 산골 아줌마한테 버거운 얘기이고, 단지 이 일상에서 만나는 미국의 풍요에는 정말이지 괘씸해집니다. 저 수많은 물건들이 어디로부터 무엇으로부터 왔겠는지요. 그만큼 자연은 또 어찌 되었을 것입니까.
“당신들이 망친 지구니까 당신들이 고쳐 놔.”제 1세계들이 망쳐놓은 지구의 가장 큰 피해자는 또 제 3세계입니다. 못사는 것만도 억울한데 말입니다. 원자락 폐기물들이 어디로 가 있을지 짐작하는 건 전문지식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런데 어쩝니까, 그들이 느끼고 알고 움직일 땐 이미 늦는 걸요. 아픈 사람이 먼저 움직여야합니다. 어쩝니까, 목마른 이가 우물 판다지 않습니까. 그러니 못살고 아픈 제3세계의 우리같은 이들이 먼저 지구를 지키는 독수리 5형제가 되어야지요.
하지만 이 환경파괴의 거대한 괴물 앞에 평범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알아차린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듣고 같이 실천하고...
적게 쓰는 산골의 삶이기는 해도 긴장하지 않으면 생활은 또 금새 쓰임새가 헤퍼집니다. 요새 저는 종이를 덜 쓰기 위해 애쓰는 것과 더불어 가방에 수저를 넣고 다닙니다. 플라스틱이든 나무든 일회용 수저를 쓰지 않기 위한 노력이지요. 먼저 나무를 염두해 두었음은 물론입니다. 제가 처음 해낸 생각은 아닙니다. 몇 해 전 외국의 한 친구가 시작한 일이었고 제 삶에 구체적으로 다가온 것은 불과 몇 달 전이었지요.

또 미국에 왔습니다. 이전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이러다 기어이 망하고 말지, 아무렴.”
외국인에다 언어가 서툴기까지 한(그것도 두 달 머물다 돌아갈) 아줌마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다만 미국에서도 제 가방엔 수저가 들어있답니다. 카페테리아에서 맞은편에 앉은 이는 넘치는 일회용 수저와 가방에서 꺼낸 제 수저를 번갈아보며 의아해하겠지요. 하지만 어느 날 그의 가방에도 수저가 담길 날이 오지 않겠는지요.

(2006년 6월 4일 해날,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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