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조성학이가 왔습니다.
지난 2004년 6월 쯤에 왔으니, 근 2년만입니다.
오늘은 어머님이랑 함께 왔습니다.
성학이가 가져 가야한다고 해서 서울서 시계도 하나,
아이들 씻고 나서 바를 크림도 두엇,
어른들도 쓰라고 손크림 하나,
아이들 다친 데 붙일 여러가지 모양의 밴드상자 하나,
결혼축하한다시더니 희정샘 줄 선물 하나를 들고 오셨습니다.
참 논두렁 회비 500달러도 아버님이 들러 보내셨습니다.
잊지 않고, 이 작은 공간을 다시 찾아주신 것도 고마운데,
이것저것 또 챙겨오셨네요. 고맙습니다.
성학이는 짐작대로 정말 많이 컸습니다.
어린 성학이가 아니었습니다.
키도 훌쩍 컸고, 치아는 교정기를 하고, 좀더 차분해진 느낌이랄까...
모르죠. 며칠 있으면 또 어떻게 변할지...
머무를 기숙사에 먼저 같이 갔는데, 많이 놀라더군요.
2년 전에 왔을 때는 불 때고,화장실도 정말 재래식인 조릿대집에서 지냈는데,
이게 왠 거냐 하는 눈치였습니다.
물꼬의 긴 세월의 땀과 노력, 많은 분들의 큰 도움으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알아들었는진 모르겠지만...
성학이 말로는 (한국말을) 듣는 것은 90%, 말하는 것은 2%라고 하더라구요.
어머님은 친정이 있는 부산으로 가셨습니다.
다시 받아줘서 고맙다고 하시던데, 뭘요...
정말 고마운 건 저희들입니다.
이 산골에 조그만 공간을 잊지않고, 다시 찾아준 성학이와 성학이 부모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특히 물꼬의 열렬한 팬이 되어주신 아버님께!
성학이는, 저희의 염려와 걱정보다 훨씬 더 잘 지내겠지요.
이 산골의 바쁜 여름이, 훨씬 더 풍성해지겠지요.
성학이 잘 도착했습니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지내겠습니다!
물꼬에서의 생활이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읍니다.
한국 음식을 먹는 것에서부터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부대낌과 의미까지....
무엇이라고 딱히 꼬집어서 표현하지는 않지만, 성학 본인도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있기에, 또 다시 들어 간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